믿지도 말고 의심도 하지 마라

믿음은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의심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많은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며 자신이 믿는 것에 반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진다. 또한 일단 한번 형성된 믿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믿음이 의심할 수 없는 신념이나 종교적 확신으로 발전하여 개인적 고정관념과 사회적 편견을 양산하어 많은 갈등을 야기시킨다.

의심이 많은 사람을 싫어하고 의심에 대해 의혹을 갖는다. 잘 믿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뭔가 의심스러운 눈치를 보이면 기피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도처에 많은 위협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안전하게 살아 낼 수 없었다. 의심은 생존에 필수적인 덕목이다.

믿음과 의심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유전적으로 계승되어온 본능이다. 그 옛날 사냥을 떠났을 때 함께 하는 동료에게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외 모든 주변과 상황에 대해서는 경계와 의심을 가져야 했다. 동료를 의심하면 내부 분란과 갈등이 생겨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없다. 또한 놓여진 상황에 대해 경계와 의심을 품지 않으면 위험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없게 되어 생존이 어렵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본능은 갈등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된다.

믿는다는 말 속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이며. 의심이 간다는 말에는 웬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방어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믿는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고, 의심스러운 사람에게는 배타적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갈등이 생기게 된다. 견해가 같아도 믿고 싶지 않는 사람의 행위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며 의심하게 되고 견해가 달라도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은 믿고 싶어 한다.

명품만 취급하는 가게에 매우 부유해 보이는 부인이 나타나 물건을 보고 있다면 판매자는 그 부인이 물건을 구매할 거라는 기대로 정성을 다해 친절을 베풀 것이다. 그러나 그 부인이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그냥 가면 판매자는 섭섭함에 명품을 보는 안목이 없는 졸부라고 욕을 할 것이다. 가게에는 누구나 들어와 물건을 구경할 수 있으며 그 부인은 그냥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는지를 살펴보려 들어왔을 뿐인데 점원 스스로가 구매할거라고 믿은 자신의 기대심리에 배반당한 것이다.

상황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선입견으로 보려하다가는 끝내 좌절하고 실망하게 된다. 결국 주관적 욕망은 객관적 사실 앞에서 좌절하는 심리적 갈등만 야기되어 고통만 안겨 줄 뿐이다. 믿었기 때문에 실망감이나 상실감이 생기고, 의심했으므로 불쾌하고 못마땅한 미움이 생겨 상대의 진심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실망이나 섭섭함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의심하지 않으면 걱정이 없기 때문에 상대나 상황에 대한 불편함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불편한 관계가 맹목적인 믿음과 지나친 의심에 근거하기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믿지도 않고 의심도 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믿음과 의심에는 상대방의 태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의심하거나 믿어주는 나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 의심하는 순간 상대방은 과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고, 반대로 의심을 살만한 거짓이 있음에도 믿어주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은 마땅히 의심해야 한다.’라고 했고 소크라테스는 ‘선입견과 유행을 따르는 믿음을 없애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맹목적인 믿음은 또 하나의 번뇌일 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맹목적으로 매달림으로서 위안을 얻는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로 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의심하는 것도 번뇌이다. 무엇인가를 무조건 의심한다면 자유로부터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 된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와서 믿으라.’라고 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에게 추앙받는 붓다 자신의 말일지라도 맹목적으로 믿거나 무조건 의심하기 보다는 와서 직접 들어 보고 편견없이 판단하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믿지도 말고 의심도 하지 말라는 말은 외부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 심리를 스스로 조절하여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경계심이 없이 사물이나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지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이며,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으면 상대의 의도를 생각하기 보다는 보여지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게 된다. 모든 관계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면 사물이나 상황을 간결하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믿지 말라고 해서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며 의심하지 말라고 해서 믿으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그냥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바라보라는 말이며, 먼저 염려하여 미리 예단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믿고 말고 할 그 무엇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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