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치명적 농담

한형조 저 | 문학동네/문학동네브랜드전 | 2011년 03월

이 책은 저자가 금강경을 해설한 ‘허접한 꽃들의 축제’와 세트로 출간되어 그에 앞서 읽기를 권하는 금강경 별기라고 제목에 밝히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어려운 금강경을 일반인들이 보다 편안하게 그 취지와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자하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

따라서 저자가 책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불교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으로 일종의 불교개론에 해당한다.

통상적인 관점과 상식적인 시각으로 불교를 이해하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이거나 의외로울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자기 욕구라는 환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고통과 번뇌의 근본 원인이 외부의 조건이나 환경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는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가난과 역경, 전쟁과 기아 같은 외적 환경을 개선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부차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불행과 비참의 근본 원인이 외부에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 있다고, 즉 주변의 여건이나 타인의 악의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독소 때문에 야기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는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것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것을 원칙적으로 ‘해소’하라는 가르침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불교가 문제 삼는 것은, 객관적 실제가 아니라 ‘그 실제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시선’으로 다시 말하면 불교가 점검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라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란 인간은 “결국,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 갇혀 살고 있다는 의미로 인간은 제멋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고집하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분별은 결국, 자신의 관심의 투사일 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이 주관적 안목이 그 사람의 ‘토대’로 금강경은 이 토대를 경계하라고 되풀이 되풀이 타이르고 있다. 사물이나 사건의 자극에 의해 인간의 감각기관은 이를 수용하고 또 거기 감정적 의지적으로 반응한다. 이것이 반복되고 패턴화되면서 견해라 부르는 편견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교의 해법은 우리가 아는 ‘사물’의 세계가 주관적 욕망과 환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이며, 주관적 욕망에 물든 환상의 세계를 상(相)이라 하고, 그 칙칙한 점착을 벗어난 객관의 세계를 법(法)이라 규정하면서 불교의 지혜, 혹은 반야(般若)로서 이 두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통찰력은 ‘이편’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저편(彼岸)’의 행복과 평화로 인도해 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세계를 받아들일 것.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지금 여기의 이 사바 밖에 없으니,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떠나려는 유혹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 다만 그 속에서 우리는 정신적 삶을 업그레이드하고 혁신시켜나가야 한다고.

이 낡고 후줄근한 지상을 떠나 상상의 유토피아나, 죽어 경험하게 될 천국이나, 뭐 그런 초자연적인 영역은 꿈도 꾸지 말라며 이 지상이 전부이고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여기 지금’ 주어진 삶이 충실하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다만 가리지만 않으면, 분별만 하지 않으면 그 세계가 열린다며, “네 마음을 에누리 없이 있는 그대로 믿으라.”고 한다.

저자는 불교, 그 위대한 가르침은 궁극이 아니고 방편이며, 불교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려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행동’을 지시하는 것은 없다면서, 불교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불교는 반쪽만 가르치며 나머지 반쪽은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채우고 증거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바라고 꿈꾸는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금강경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고 한다.

“깨달음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저술인 ‘금강경 별기’라고 하는 이 책 ‘붓다의 치명적 농담’을 오롯이 이해했다면 금강경을 굳이 따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 내용의 핵심적 문장이면서 제목으로 사용된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책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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