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로는 행복해 질 수 없다.

바스나고다 라훌라 저 | 이나경 역 | 아이비북스 | 2010.04.21

불교란 오직 덧없음과 괴로움, 그리고 쾌락의 절제만을 중시하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불교의 모든 경전 번역가들이 붓다의 설법의 핵심 키워드인 “Dukka”를 ”괴로움(苦)“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교에서는 속세를 비참한 곳이라는 인식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붓다가 말한 “Dukka”는 단순히 ”고통“, “괴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탐욕스러운 마음 때문에 생겨나는 불편함의 괴로움“을 뜻한다. 또한 이 불편한 괴로움은 출가 제자들의 수행에 필요한 개념이었을 뿐, 일반 신도들을 위한 가르침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 종교적 접근이라는 관점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여타 종교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붓다는 수행자의 생활과 일반신도들의 생활을 구별하여 설교하였다.

붓다는 수행자와 구별하여 일반 신도들의 생활 속에서의 행복의 소중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또 존중하였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재산을 모으도록 장려했을 뿐 아니라 저축, 투자 등 재산관리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또한 신도들에게 성공적인 대인관계 및 사회관계, 의사결정, 그리고 건전한 인성계발을 이룰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붓다는 이러한 일상생활에서 신도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붓다는 일반 신도들에게 물질적인 성공에 대해서 많은 말은 남겼다.

붓다는 사람에게는 부귀해질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했지만 이는 조건부 자유였다.

“부귀해 지고 싶다면 계율을 지켜라.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축적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라.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재물을 올바르게 써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더 많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이며, 불교의 윤리지침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해 노력할 자격이 있다.”고 설파했다.

붓다는 사람들이 보시나 소비로 재산을 다 날려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붓다는 저축을 중시했는데 ‘저축은 예기치 못한 비극이나 불운이 생겼을 때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붓다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흥청망청하지 않는” 신도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과도하게 쾌락에 탐닉하지 말라.”면서 이는 적당한 수준을 지킴으로서 육신의 편안함을 유지하고 무병장수를 누리라는 가르침이다. 적당함이란 심신이 편안하고 건강하며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말한다. 따라서 붓다는 일반신도들이 일상 속에서 취하는 쾌락을 금하지는 않았다.

붓다는 올바른 목적과 노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성공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부귀해지고 싶다면 우선 정신자세를 바로 잡으라고 강조했다. 즉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물질적 성공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붓다가 영적인 생활이 아닌 일상생활 속의 오락이나 대인관계, 결혼생활 등 우리의 일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붓다는 신도들에게 “오락을 즐기는 일을 금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하게 누려야 한다면서 지나치게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면 재산을 탕진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라고 충고 하였다. 이 또한 오락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즐길 때 생기는 부작용을 우려하였던 것이었다.

친하게 어울릴 사람을 선택할 때도 붓다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붓다는 훌륭한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면 훌륭한 친구를 만나기를 애달아하기 보다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하고 비유하며 차라리 외로운 인생을 보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평화로운 결별을 선택해야 하는 때도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원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붓다는 남과의 대화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과는 다른 충고를 하고 있다.

붓다는 “진실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이 꺼려한다면 그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진실들도 있다는 것이다.

붓다는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으며, 진실이 아닌 일을 말하더라도 목적과 의도가 유익하다면 거짓말이 아니라고 보았다. 즉, 남을 배려하는 자애의 마음이 없으면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붓다의 견해이다.

붓다는 사회제도와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이나 규범이 없었던 고대사회에서 혼란을 다스릴 통치자가 절실히 필요해지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지도자를 뽑았다. 이것이 왕권의 시작이다. 왕을 뜻하는 마하삼마타(M몸 Sammata-위대한 선출자)란 단어가 그 증거다. 또 공동체 내에서 악행을 일삼는 몇몇 사람들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정신수양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종교가 탄생했다. 즉 사회의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붓다는 인간을 위하고 인간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제도가 바뀌거나 수정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붓다는 알려진 모든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는 마음이 현명한 판단을 방해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모든 정보를 신중하게 검증하고 열린 마음으로 판단하라고 가르쳤다.

무엇인가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결정할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거부당하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붓다의 가르침에서 절대적인 진리나 이상론은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중심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이라면 아무리 자신의 견해와 다르고 새로운 개념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도 사실은 사회규범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붓다는 신도들에게 학설이나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특히 결정을 내릴 때는 추측과 상상에 근거한 이론을 배제하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자신의 가르침조차도 의심하라고 했다.

붓다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려면 무엇보다 ‘생각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사고의 폭을 제한하는 잘못된 기준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이성적 사고와 생각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붓다의 자비심에 대해서도 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자신의 행복이 남의 행복보다 뒷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자비심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며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특히 선한 마음만으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결과를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붓다는 ‘나’란 자유로운 개인이며, 그 자신의 행복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선행을 쌓아 성장하는 것도, 악행을 거듭하여 타락하는 것도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 아무도 나를 깨끗이 해 줄 수는 없다.” 붓다조차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단지 “행복으로의 길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설파했다.

붓다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성취는 없다.”고 주장했으며, 행복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리킨다.

이 책은 우리가 붓다에 대해, 선함에 대해, 자비심에 대해, 그리고 부와 성공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의미의 성공과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이 종교지도자로서 오직 영적인 것에 있지 않고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깊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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