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에 에세이 ‘추풍한담’ 연재

월간 ‘사람’ 2020년 1월호 부터 김용덕의 글이 ‘추풍한담’이라는 시리즈명으로 1년간 연재됩니다.

1월호에는 ‘관계에 얽매이지 말자’는 제목의 글이 일러스트와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 속에 놓여진다. 그리고 평생 동안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관계 중에서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다.

관계 속에는 역할이 주어지게 되는데 주어진 역할에는 서로가 기대하는 수준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수준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 낙오되거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 위해, 재능 있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능력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책임 있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관계 속에서 따돌림 받는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하며 이것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소홀히 해도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사회는 관계를 지나치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배려가 미덕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관계간의 배려는 자신과 상대방에게 불편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관계를 이유로 행해지는 간여는 간섭이 되고 불편으로 작용하여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관계의 지속은 좋든 싫든, 싫고 좋은 다양한 감정들이 축적되어진다. 이렇게 축적된 감정들은 애증으로 쌓이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관계와 사건은 각 개인의 개별적인 선택이고 책임이다. 따라서 관계를 이유로 타인의 문제에 간여하거나 책임지려 하는 것은 과잉행동일 수 있다. 이것은 상대가 원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장자는 관계를 갖더라도 관계에서 생기는 것을 모두 잊으라고 한다. 어제 만난 사람은 어제의 인연이고 그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났다 해도 그것은 오늘의 새로운 인연이고 관계라는 것이다. 어제의 인연으로 오늘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오늘 새로운 인연이고 새로운 관계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이 듯이 관계 또한 그러하다. 어제의 좋은 인연도 지나간 인연이므로 연결 지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어제의 불편한 관계도 지속되기 보다는 오늘 새로운 관계로 거듭 나는 것이어야 한다. 즉, 낯선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에 아무런 얼킴이 없는 관계처럼 상호 간섭할 것도 없고 부담도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통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인간은 너무도 좁은 관계의 공간 속에 놓여 있다. 관계는 자유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구속을 피할 수 없지만 관계로 인해 스스로를 지나치게 구속할 필요는 없다. 관계의 공간을 확장하고 관계의 사슬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인간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존재이며 자신의 존재로 하여 세상도 존재하는 것이다. 장자는 ‘물이 부족한 웅덩이에서 물고기는 서로 부딪히며 팔딱거리지만 넓은 바다 속에서는 다른 존재를 상관하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고 하였다.

 

 

여름 산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소리 한가롭고
눈부신 헷살에 맨드라미 빨갛게 피었다.

나른한 개 한마리 석탑에라 잠들고
부처는 홀로 서늘한 법당에 깨어있다.

불법은 멀고 나는 여기 있는데
스님은 보이지 않고 하얀나비 한마리
법당 위로 날아간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마라.

세상을 바꾸려 하지마라.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바꾸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스스로 변화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많이 바꾸어진 듯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오만이고 착각일 뿐이다. 겉모습은 그렇게 보이지만 기본적이고 실제적인 것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시끄럽게만 할 뿐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인간들의 쓸데없는 노력은 전쟁을 발발케 했고 환경만 무차별 파괴되어 자연의 질서와 우리의 일상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역사 이래 많은 위인들이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였고 보기에 따라 나름 일정한 성과를 보인 듯이 기록되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그들의 노력은 모두 실패했다.

인류 문명의 탄생 이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을 둘려싸고 있는 삶의 겉모습일 뿐이다. 세상의 질서는 변화하지 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원래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진리인 것이다.

붓다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하였고 자신을 바꾸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며 보여 주었다. 붓다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애초부터 붓다는 시각이 밖으로 향해 있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 내부의 문제로 보고 스스로가 바뀌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세상은 연기에 의해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운행되고 있는데 인간의 어리석음이 이를 못 견디고 순리를 벗어나려는 억지 노력으로 고통의 크기만 자꾸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맹자에서 ‘순천자존역천자망(順天者存逆天者亡)’이라 하였다. ‘하늘의 진리 즉,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자는 평화롭게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고통 속에서 망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순리에 역행하고 있는 자신을 변화시켜 세상과 일체감을 유지하고 그 흐름에 따르는 것이 세상이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가 됨을 깨달아야 한다. 과욕을 버리고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세상의 큰 흐름에 스스로를 맡기면 더 이상 아무런 문제없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욕망과 경쟁이 치열한 현실 속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향해 모험하고 도전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바뀌면 자신을 둘려 싸고 있는 상황도 변화될 수 있으며,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같다.

세상과 타인은 그들 나름의 질서와 관점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므로 내가 임의로 개입하여 세상과 타인을 변화되도록 애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이 더 쉽다.

자신을 바꾸는 일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현실의 소소한 욕심부터 내려놓을 수 있다면 자신을 바꾸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씩이라도 스스로를 바꾸어 자신이 변화될 때 세상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여 우리에게 아름답게 다가 올 것이다.

자신을 변화시켜 스스로를 평화롭게 하자. 스스로가 평화로운 사람은 주변을 번잡하게나 불안하게 할 연유가 없다. 내가 평화로우면 주변이 평화로울 것이고 주변이 평화로우면 세상이 평화롭게 될 것이다.

멀리서 산을 보면

멀리서 산을 보면
푸르고 넉넉한 그 품에 안기고 싶다.

그러나 정작 그 산에 안기면
푸른 산은 볼 수 없고
먼저 하늘에 가까이 가려고 다투는
무성한 나무들 뿐

멀리서 산을 보면
파란 하늘에 닿은 그 정상에 서고 싶다.
그러나 정작 그 정상에 오르면
하늘은 더 높이 달아나 있고
멀어진 하늘을 향해 애타게 소리치는
헛된 메아리 뿐

삶은 이루어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다가가는 과정이라

당첨을 기다리는 한 장의 복권처럼
바라보며 소망하는 그 순간에 의미가 있을 뿐
비록 그 곳에 닿는다 하여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닐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