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어떠한 방해도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대로 뜻대로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진작에 포기를 하고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회 속에서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산다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많은 무리가 따르게 된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불편해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끼치게 된다. 주변이나 타인의 평화를 지키면서 나혼자 마냥 자유롭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장 자끄 루소는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적어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을 수 있고, 가고 싶지 않다면 가지 않을 수 있고 보고 싶지 않으면 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손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경우에는 개인을 떠나 주변이나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이 가능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고 사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일상을 살아간다. 성공을 위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체면을 위해. 세상살이에서 부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체면을 외면하고 살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최선이라 자신을 위로하면 살아간다.

이러한 부와 성공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 때문에 하고 싶지 않는 것을 하는 것에 굴욕을 느낀다면, 그래서 하고 싶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권리를 누린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의 불확실성에 불안하여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빈곤의 불편함은 느껴 보았지만 자유의 편안함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에 이 ‘하지 않을 자유’를 너무도 쉽게 포기한다.

꿈꾼다고 해서, 바란다고 해서, 최선을 다 했다고 해서 꼭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얻어지는 것에 칭찬은 있지만 성취감은 느낄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여 성공하면 그로 인한 성취감은 무엇보다도 클 것이다. 만약 실패를 하였다 해도 아쉬움보다는 해 보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해 봤다는 최소한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 이끌려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여 성공했다 해도 안도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만족은 얻기 어려울 것이고 만약 실패하였을 경우 그로 인한 억울함과 상실감은 매우 클 것이다.

우리가 주변의 시선에 물들지 않고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유유자적 스스로 평화를 유지하며 지금 이 순간에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붓다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한 것은 홀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외롭게 가라는 의미보다는 세상의 헛된 가치나 타인의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내일의 가능성에도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로 현재를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나를 대신할 존재는 없기 때문에 자유란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의지와 가치를 존중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저 : 신용산 ㅣ 출판사 : 한걸음더 ㅣ 발행일 : 2008년 10월01일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이 책은 초기경전의 시각에서 금강경을 분석하고 있다.

금강경은 붓다의 열반 후 500여년이 지난 후 불교 사상가들에 의해 저작된 것으로 금강경은 한국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근본지침으로 삼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이다. 붓다의 깨우침과 가르침을 가장 체계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강경은 불교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읽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불교경전이다.

금강경은 기존의 교단에서 설명하였던 모든 수행론을 팽개치고 단도직입하여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는 최상근기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경전이 원래 붓다의 가르침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은 불교의 경전이 모두 붓다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붓다, 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 철학자요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깨달음을 수행으로 증명해 낸 참사람이었다. 붓다는 자신은 물론 그 어떤 전지전능한 신도 현상의 법을 만들지 않았고 만들 수도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백 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는 그의 추종가자들에 의해 이미 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상을 통찰한 인간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던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그의 바람과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 책은 붓다 사후 붓다의 가르침과는 달리 붓다가 왜 절대자가 되었고 수행을 강조하였던 그의 가르침이 신앙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금강경의 해석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붓다는 ‘인간이 누군가의 피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함으로서 세상에 존재하며 존재하는 나 역시 여러 조건에 의해 형성된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고 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은 모두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붓다 열반 2,500여 년.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불교는 대단한 종교 세력을 이루었지만, 근원적인 괴로움을 깨치려 몸부림쳤던 인간, 그리하여 깨달음을 이룬 위대한 스승이었던 붓다는 그저 신화적 존재로 추앙받으며 저 법당 안에 권위의 상징으로, 우리는 구원해 줄 신으로 모셔져 있다.

금강경 저술에 참가하였던 대승경전의 편집자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으면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토대로 자신들의 새로운 사상을 구축하면서 대중들 곁으로 다가갔다. 물론 대승경전이 인간 부처님을 절대적인 초원자로 격상시킴으로써 그분의 법을 근본부터 훼손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책의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는 붓다의 원래 가르침과 금강경이 말하는 가르침을 비교하면서 금강경이 주고자 하는 가르침이 무엇인가 보아야 하며 곳곳에서 눈에 띄는 바른 법에서 어긋나는 가르침의 수용여부는 경을 읽는 이의 안목과 신앙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절대자를 필요로 한다는 관점에서 대승불교가 붓다를 역사적인 인물에서 신으로 격상시킬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불보살의 창조해 중생의 귀의처가 되도록 하였다고 변론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쩌면 저자가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붓다의 말씀을 책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해탈에 도움이 되는 않는 논쟁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 붓다의 말씀을 빌어 금강경의 안고 있는 의미를 옹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을 읽으면서 성열스님이 그의 저서 ‘붓다 다르마’에서 ‘만약 고따마 붓다의 견해와 배치된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할 수가 없다.’라고 한 글의 의미가 계속 함께 했다.

어째던 이 책을 통해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불교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조계종이 소의경전으로 금강경을 삼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