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인간, 호모라피엔스

원제는 “straw dogs”로,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을 인용한 것이다. ‘지푸라기 개 Straw Dags’는 고대 중국인들이 제사를 지낼 때 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희생물이다. 이 개는 제사가 끝날 때까지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지만 제사가 끝나면 내팽개쳐졌다.

철저히 반휴머니즘의 편에서 말하는 존 그레이. 그에게 인간이란 변화하는 환경과 무작위로 상호작용하는 유전자 조합에 불과하다.“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그는 ‘자유로우며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오래된 가정은 편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존 그레이는 서구 문명의 핵심에 자리한 휴머니즘을 인간 ‘종’ 중심주의를 지탱하는 원천으로 보고 휴머니즘의 핵심 관념인 “진보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세계에 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 모두가 비판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한다.

존 그레이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식과 발명은 향상될 수도 있겠지만 윤리는 대체로 그대로일 터였으며, 역사란 궁극의 의미를 갖지 않은 채 흘러가는 일련의 순환 고정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이라는 성경의 신화는 금지된 진리를 담고 있다.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지 않는다는 진리 말이다.”

“삶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은 구원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인간들은 득실을 계산하며 살려고 애쓴다. 과학이 합리적인 세계에 이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은 비정상적인 환상이다.

자크 모노는 생명이란 사물의 본성에서 연역해 낼 수 없는 요행의 결과지만 일단 생명이 생겨나면 무작위적 변형들의 자연선택 과정에 따라 진화한다고 보았다.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간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점에서 모노가 옳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우연적 작용의 결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윈의 이론은 우리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이며, 우리의 운명이나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의 운명이나 다를 바 없다는 자연주의의 진리를 보여 준다. 동물들은 태어나 짝을 찾고 음식을 구하고 죽는다. 그게 다다.

기독교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창조하였고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했다. 또한 휴머니즘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 어느 쪽이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다.
그러나 휴머니즘을 처음 비판한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동물과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이 실제로 경험한 것은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신체적인 필요에 의해 추동된 것이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존 그레이는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택한 삶’이라는 이상은 우리가 실제 사는 방식과 맞지 않다. 우리는 삶의 결정자가 아니다. 우리에게 깊은 흔적을 남기는 사건들은 그 중 일보조차도 우리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태어난 장소와 시간, 부모, 모국어 등 이 모두는 우연이지 선택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우연이 만들어 내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따라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이유들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결코 없는 사람이다. 선택한 대로 살기보다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가는 이치대로 산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야생의 동물처럼, 혹은 기계처럼,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존 그레이는 책에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열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여 이를 보충하여 강조하고 있다.
“가장 고결한 인간은 쉬고 있을 때는 죽은 자와 같고, 움직이고 있을 때는 기계와 같다. 그는 자신이 왜 쉬는지, 왜 쉬지 않는지를 모르고, 왜 움직이는지, 왜 움직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면, 인간의 여러 본능들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안전을 갈구하면서 쉽게 지루해 하고, 평화를 사랑하지만 폭력을 열망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욕구를 다 충족할 수 있는 삶은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자기기만이라는 선물 덕분에 자기 본성을 모른 채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는 약탈하는 사람을 뜻하며, 현생 인류를 약탈자로 비꼰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존재 이유도 깨닫지 못하면서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에는 취해 주변의 모든 자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인간의 몰염치를 비판하면서 이러한 행위들이 결국에는 인간 스스로가 파멸의 길을 빠르게 달려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저자 존 그레이 | 역자 김승진 | 2010.08.31
원제 Straw dogs :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

혜승스님

1936년 충남 대덕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6세에 논산 개태사로 출가했다.
개태사에서 당대의 선객이었던 윤포산스님을 만나 입적 때까지 9년 동안 곁에서 스님을 시봉했다.
오랜 행자 생활 끝에 1956년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정영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0년 남양주 봉선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국립공원 내 시유지여서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원각사를 불하받아 사격을 일신했다.
의정부 원각사, 양주 회암사, 의정부 사암연합회장, 제16교구본사 고운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7년 4월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으며, 2008년 10월 종단 최고의 지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받았다.

현재 고운사 회주로서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으며,
의정부포교원과 양주 연화사를 오가며 지역 불교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